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8/4/19)

우리 마음속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표현하기 싫은 더러움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 유명한 바울도 이 같은 더러움에 노출되어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바울은 그것으로 인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았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였다고 자신의 괴로움을 고백했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것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를 바울은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그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았는데 그것은 자신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 죄 때문에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롬7:15)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바울을 알게 되었고, 그 죄가 하나의 법이 되어 바울을 사로잡아갔습니다. 그 죄의 법 때문에 바울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악한 일을 자신이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지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분명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죄의 생각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해서는 안되는 그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따라갔습니다. 억누르지 못하고 해결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알면서 더러움에 빠진 것입니다. 그 생각이 그를 사로잡아서 행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바울의 의지와 관계없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아주 골치 아픈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바울과 상관이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죄라고 바울은 표현하였지만 그것도 역시 “나”인 것입니다. 내 안에 항상 있는 “나”인 것입니다.

 

이 “또 다른 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처럼 강력하게 등장합니다. 바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고 급기야 자신이 시체와 같이 무기력한 존재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바울은 스스로 자신을 “죽음의 몸” 곧 시체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바울은 시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표현처럼 “또 다른 나” 곧 죄가 행사하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우리는 먼저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가 있어야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서 마침내 응답을 받아 할렐루야를 외칠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