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목회도 이민 생활의 일부인지라 가끔은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혼동이 올 때가 있다. 때로는 한 주 내내 영어 한 마디 사용하지 않다가 다음 주일을 맞이할 때가 있다. 이 문맥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았듯이, 비록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천국 시민으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더 나아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한국말 가운데 ‘스럽다’와 ’답다‘라는 말이 있다. 둘 다 앞에 있는 명사 뒤에 따라오면서 앞의 명사의 성질이나 특징, 느낌이 있음을 나타내기에 일견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다. ‘답다’는 앞 명사의 성질이나 느낌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지만, ‘스럽다’는 그런성질이 있으나 미흡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

 

프랑스의 위대한 지도자 샤를 드골은 말수는 적었지만, 명언(名言)과 명문(名文)을 많이 남겼다. 그의 진정한 힘은 지성(知性) 있는 오만이었다. 드골은 회고록에서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하여 머슴 행세를 한다’ (In order to be the master, the politician poses as the servant) 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인은 정치인 스러울 지는 몰라도, 정치인답지는 못한 것이다.

 

당신이 학생인가? 학생은 학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학생다워야 한다. 당신이 주부인가? 주부는 주부 스러운 것이 아니라 주부다워야 한다. 같은 의미에서 성도는 성도 스러운 것이 아니라 성도다워야 한다.

 

성경은 우리를 타락한 죄인으로 정죄한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웬만한 죄라면 하늘 천사를 보내셔도 되었고,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간의 수만큼 천사를 만드셔서 대신 죽게 하셔도 죄용서가 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하나님 당신께서 직접 죽으셔야 했다면 우리의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다. 우리는 그 것을 잊고 지낸다. 내 본질이 죄 덩어리라는 것 말이다. 얼마나 타락했는지도 감을 잡지 못한다. 자꾸 자기의 의를 주장한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만 영광 받으셔야 할 예배를 인간의 잔치로 둔갑시킨다. 종교 행위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를 모른다. 선한 일을 하면서 시커먼 죄를 뚝뚝 떨어뜨리고 다니는 자기 자신을 보지를 못한다.

 

나는 경건의 모양만 있는 신자스러운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성도다운 사람인가? 오늘이라는 문맥 가운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시간 가운데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