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희생의 공동체(7/14/19)

목회를 하다 보면 성도 가운데 종종 무서운 분들을 뵙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송곳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런 분입니다. 지난 주 어떤 청년에게 받은 질문입니다. “사사기 8장과 12장을 읽다가,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을, 입다가 암몬 사람들을 무찌르고 왔는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기에, 전쟁 할 때 자기들 안 불렀다고 서운해 하나요?”

“에브라임 지파는 헌신이 없는 지파라서 전쟁은 나가기 싫었지만 전리품에 관심이 많아서?” 이렇게 한마디만 해주면 너무 교과서 적인 대답이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성경을 열심히 뒤적거렸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야곱의 후손이 바로 열 두 지파지요. 에브라임은 므낫세와 함께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의 아들입니다.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르우벤은 장자권을 빼앗기게 되면서 제외되고, 야곱의 손자뻘이지만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같은 몫을 차지하게 됩니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서 여호와의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는 제외됩니다.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도 전 영토의 1/2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소유였습니다. 기득권과 자부심이 남달랐지만, 성경에 기록된 에브라임의 역사를 보면 이에 걸맞은 헌신과 배려는 없었습니다. 미디안이나 암몬과의 전쟁에 에브라임 사람들을 가담시키지 않았다기보다, 사사기 7장 24절에도 전쟁 중간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아서 에브라임이 참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승리가 끝나자 “아니!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어?”라고 오히려 딴지를 겁니다. 희생의 현장에는 안 보이다가, 승리를 통해 얻은 전리품을 나눌 때에야 나타나는 겁니다.

왕정 시대, 솔로몬이 죽고 난 이후 열 두 지파 중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한, 열 지파가 반역을 하고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세웁니다. 왜 반역의 순간마다 에브라임이 등장할까요?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갑’이라는 의식과 기득권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나중에 앗수르의 혼혈 정책과 이주 정책으로 인해 사마리아인이 되었습니다. 훗날 포로 이후에 돌아온 백성들을 또 다시 방해하면서 딴지를 겁니다.

 

결국 호세아서에 이르러 에브라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헌신과 배려가 없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헌신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공동체를 위해 내 것을 좀 포기해야 할 때, 그래서 희생이 좀 필요할 때 그 자리를 피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본격적인 정착 기간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처음 이 타운에 왔을 때 받은 사랑을 기억하시나요? 이 정착 사역은 다른 사람, 다른 교회의 사역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사역이요 우리의 사역입니다. 헌신이 부재된 자존심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소중한 헌신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의 열매를 함께 수확하는 복된 여름학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