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공장에서 일하는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 와서 상담을 했다. “목사님! 제가 다니는 공장의 모든 분위기와 환경을 생각할 때 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고 신앙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공장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목사님이 자매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매님이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주의 뜻이라는 확신을 주께서 허락해 주셨습니까?” 자매는 고개를 살며시 흔들며 대답했다. “아직은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자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매님! 자매님은 어디에 등불을 켭니까?” 자매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두운 곳이지요” 목사님은 다시 물었다. “어느 때에 켭니까?” 자매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두운 때지요” 이 때 목사님은 자매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자매님이 처하고 있는 그 공장과 그 환경이 어둡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그 자리에 등불로 주셨다는 생각을 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고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했습니다. 빛 앞에 선 물체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깁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으려면 물체가 빛 가운데로 들어가 완전히 불타서 없어질 때에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의미는 너희가 내 안에 들어와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나를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아 장사지내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부활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런즉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촛불예배에 참석해 보신 분은 이런 경험이 다 있는 줄 압니다. 처음 예배를 시작할 때는 초 하나에 불을 켭니다. 초 하나의 불은 작고 희미합니다. 그러나 그 초 하나로 시작해서 옆에 있는 초에 불이 붙습니다. 또 다른 초에도 붙여집니다. 촛불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다섯이 되고, 열이 되고, 오십이 되고, 백이 됩니다. 마지막에 교회당 안에 천명이 있으면 천명의 불이 다 붙게 됩니다. 그러면 온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나의 적은 촛불 하나가 이 캄캄한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적은 촛불이지만 내가 이 불을 밝히고, 친구가 밝히고, 믿는 사람 전부가 밝히고, 즉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든지 이 양심과 이성과 성령의 불을 밝힌다고 한다면 이 아름다운 지구별은 환하게 비췰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등불을 환히 켜서 어둠 속에 비추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5:8)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서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