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간에도
스탈린의 딸이 자신의 아바저 스탈린 운명의 장면을
뉴스위크지에 이렇게 기고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최후의
순간이 가까왔을 때 눈을 갑자기 뜨고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노한 눈이었다. 그 눈을 보는 것은
무서웠다. 그리고나서 왼손을 들고 무엇을 가리키는듯
하였다. 죽음을 무서워하고 있는 빛이었다. 그 팔이
떨어진후 그는 영면하였다.”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나라도 믿지않을 때 누구나 이런 고통스러운 최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요한 웨슬레의 동생이며 찬송가 작가인 찰즈 웨슬레는
운명 직전에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기쁨니다. 아 만족하다. 만족하다.” 얼마나 평화스럽고
행복한 죽음인가? 자기를 천국에 맞이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쁜 낯을 그는 보고있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죽음의
시간이 모든 것이 끝나는 시간으로 생각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믿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죽음은
피어리드(.)가 아니라 코머(,)이다. 한국 사회에서 상문하는 말은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고 종교가 없는 사회의
상문의 말이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삽니다”
즉, “마지막날 부활할 때는 삽니다”하는 말로 위로의
말씀을 교환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도 살고 지금도 사는 존재들이다.